저는 술 마시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술 자체가 싫은 것은 아닙니다. 술 마시고 나서 아이들 돌보기, 설거지, 청소 등등 파도처럼 끝도 없이 밀려드는 집안일을 처리할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 사람은 혼자서 참 잘도 마십니다. 하… 오늘은 너무 화가 나서 저 사람이 제일 아끼는 발베니 12년을 몰래 마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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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베니 12년 가격이 어라?
위스키는 마셔본 적이 없어서 가격에 대한 감이 없습니다. 그래서 발베니 12년이 대체 얼마나 비싸길래 저렇게 애지중지하는지 인터넷에서 찾아보았습니다.
고맙게도 가격을 올려두신 분들이 계셔서 금방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발베니 12년 더블우드는 코스트코, 트레이더스에서는 최저 9만 원대에 살 수 있고, 주류 백화점 같은 곳에서는 18만 원 정도까지 가격이 올라가는 것 같았습니다.
전에 선물 받은 것이라고 하길래 자세히 알아보지 않았는데, 이제 보니 선물로 받을 만한 가격이 아닌 것 같습니다.
하…
쎈 술에 대한 안 좋은 기억
그렇게 애지중지하는 술이니까 한 잔 가득 따릅니다.
마음 같아선 머그잔에 하나 가득 담고 싶은데, 술이 독한 것 같으니 작은 잔으로 참습니다.
뚜껑을 연지 두 달은 넘었을 텐데, 여전히 독한 향이 코를 찌릅니다.
40도가 넘는 쎈 술은 연태 고량주 한 번 마셔본 것이 전부라서 조금 겁이 납니다.
좋은 술은 알콜 도수가 높아도 목에서 잘 넘어간다고 하던데, 고량주는 그냥 마시기 힘들었거든요.
(나중에 연태 하이볼로 만들고 나서야 맛있게 마셨습니다.)
연태와 같은 느낌일지, 말로만 듣던 목 넘김 좋은 술이 될지 걱정 반 기대 반입니다.
술 한 잔 마시는데 무슨 고민이 이렇게 많은 건지…. 옷 고를 때도 이만큼 고민하진 않는데…
겨우 혀끝에 살짝 가져가 봅니다.
어? 어어어???
쎈 술을 마신다는 생각이 별로 안 듭니다. 혀가 타들어가는 느낌이 전혀 없고, 오히려 부드럽게 감쌉니다.
나무 향과 알콜 향이 입안 가득 퍼져서 기분이 살짝 좋아집니다.
사랑도 술도 역시 첫 경험이 중요한가 봅니다.
발베니 12년이 처음 마시는 쎈 술이었으면, 지금처럼 소주나 맥주만 입에 대진 않았을 텐데요.
와… 이 좋은걸…
그동안 나한테 마셔보라는 이야기도 없이 혼자 마신 저 사람이 새삼 미워집니다.
기운 나게 해주는 건 의외로 술?
회사 일, 집안일, 하루하루 의미 없이 반복되는 일들에 휩쓸려서 나를 챙길 시간이 없었습니다.
화장실을 청소하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거울을 보니, 탄력 잃은 피부와 죽어가는 눈빛을 가진 내가 서 있습니다.
앞뒤 없이 야단만 치는 김 부장, 사소한 일에도 나만 찾는 아이들, 그리고 저 사람
내 에너지를 빨아먹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술을 마시면 힘든 일들은 다 잊을 수 있다고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밤에 다 재우고 식탁에 혼자 앉아서 발베니 12년 한잔하면 다 써버린 에너지가 다시 다 채워질 것 같습니다.
소중한 사람들과 발베니 12년 마셔볼까?
11월 말이 다가오면 1년 동안 뭘 했지 싶어서 후회가 더 많이 되고, 주변 사람을 찾아볼 여유도 없이 살아온 것이 떠오릅니다.
가족이나 친구들과 서로 응원하고 위로해 줄 시간이 필요합니다.
회사 일도 집안일도 저 멀리 밀어두고 즐거움만 가득 채울 시간이 필요합니다.
올해 송년회는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발베니 12년 마시면서 특별하게 만들어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