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이리저리 채이다가 회사에 도착하니, 다른 건 모르겠고 커피부터 생각납니다.
맥심 커피 한 봉지 손에 쥐고 탕비실에 들어가는데, 세상에나! 이 좁은 공간이 꽃향기로 가득합니다.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한켠에서 바샤커피 드립백을 내리고 있는 선배님의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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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러지려는 몸을 일으켜주는 건 동료가 아닌 카페인
‘커피, 커피, 커피, 커피…’
진한 카페인을 내 몸 구석구석 보내는 것이 필요했고, 이것저것 생각할 필요가 없는 믹스 커피 한 봉지가 제일 좋았습니다.
하지만 점점 축축 늘어지는 뱃살을 생각하니까, 더이상 설탕 가득한 믹스 커피는 안되겠더라고요.
그렇다고 블랙 커피를 마시자니 쓰기만 하고 딱히 향도 좋지는 않아서 더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오늘 아침에 드립백 커피를 내리고 있는 선배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죠.
바샤 커피가 뭔가요?
탕비실에서 커피를 내리는 선배 곁으로 조심히 다가가서는, 아직 버려지지 않은 커피 봉지를 슬쩍 내려다봅니다.
‘Bacha’
바차? 바샤? 바카? 뭐라도 읽는지도 모르겠는 단어가 적혀 있습니다.
“선배님 이게 대체 뭔가요?”
“이거 몰라? 바샤 커피라고 싱가포르 특산품 같은거야.”
“탕비실에 들어오는데 꽃향기 가득해서 잘못 들어왔나 싶었어요.”
“그렇게 좋았어? 하나 줄테니까 마셔볼래?”
“네네네!!!”
드립백이라는 소박한 사치
가끔 탕비실에서 드립백 내리는 분들을 보면,
‘얼른 맥심 한 봉지나 뜯고 말지 무슨 시간 낭비인가’ 싶었습니다.
그랬었는데, 어머나! 지금 제 손에 있네요?
사치 한 번 부려보려고 하는데, 어떻게 마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급하게 휴대폰을 집어들고 화면을 두들기기 시작합니다.
‘bacha 커피 마시는 법’
조금 전에 들은 이름인데도 기억이 안나서 봉지에 적힌 글자를 그대로 적습니다.
‘개봉 → 컵 위에 고정 → 천천히 따뜻한 물 부어주기’
별거 아니네?
그런데 그 아래 ‘커피계의 에르메스 바샤 커피’라는 블로그 제목이 눈에 띄었습니다.
‘아침부터 드립백 내리는 것도 사치인데, 게다가 에르메스라고? 오늘 완전 플렉스 하는거야!”
꽃다발 같은 향 vs 생수 같은 맛
컵에 드립백을 고정하고 물을 부어주니 아까 맡았던 바로 그 향기가 다시 올라옵니다.
잠시 눈을 감고 향을 맡아보니 여기가 회사라는 것을 잠시 잊어 버립니다.
이름 모를 예쁜 꽃들로 만든 꽃다발을 양팔 가득 끌어안고 있는 것 같습니다.
모처럼 분위기 내면서 머그잔을 입에 가져갑니다.
‘응??? 커피 마시는 거 맞나? 한약 마시는 것 같은데???’
‘물이 너무 적었나?’
따뜻한 물을 조금씩 더 넣었더니 이도저도 아닌 맛이 되었습니다.
결국 바샤커피 드립백으로 플렉스 해보겠다는 희망은 개꿈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잠시동안 눈에 보이지 않는 꽃밭을 거닐 수 있었던 덕분에, 블랙 커피를 더 마셔볼 마음이 생겼습니다.
(늘어진 뱃살아, 이젠 제발 그만 만나자!)
그렇다고 당장 바샤커피 사서 향만 좋은 뜨거운 물 한잔으로 만들기에는 돈이 너무 아깝습니다.
다른 드립백으로 실력을 쌓은 다음에 다시 바샤커피로 돌아오려고 합니다.
그런데 또 모르죠.
맛도 향도 가격도 적당한 다른 드립백을 찾게 될지도요.
지금의 배우자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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